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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노령의 살아있는 언론계 거장 박기병 이사장

“항상 생각하며 발로 뛰는 기자가 되라” - "당사자 직접 만나 취재해야 살아있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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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일보 최용국
기사입력 2021-12-29

▲ 박기병 이사장                                                                                       © 뉴욕일보

90세 노령의 살아있는 언론계 거장 박기병 이사장

“항상 생각하며 발로 뛰는 기자가 되라

 

 구순의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 하는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박기병 이사장을 12 13일 오전 10시에  프레스센타 10층에 있는 대한언론인회에서 만나 평생 언론을 천직으로 삶을 살아온 언론인생스토리를 조명한다

 

Q. 반갑습니다. 이사장님! 요즈음 건강은 어떠신지요?

A 하루에 6천보, 주말에는 1만보 걷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특히 저처럼 나이가 있으면 지하철에서 앉으려고 노력하는데, 저는 일부러 서서 하체 힘을 기르려고 합니다. 특히, 노인석 자리를 멀리하여 나이 들어 과시 하려고 하지 않고 “나는 젊다이런 생각으로 평소에 생활을 하며 매일 출근을 합니다. 

 

Q 고령인 연세에도 건강비결은 무엇인가요? 좌우명? 가족관계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A 특별한 좌우명보다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입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죠. 그러나 욕심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욕심을 버리고 될 수 있으면 베풀고 봉사하고 그런 마음 가짐이 건강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 관계는 1 2, 딸 둘은 출가했고, 아들은 난임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입니다. 아내도 83세로 늘 곁에서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Q. 마치 현직기자와 같은 분위기 입니다. 얼마 전 국제심포지엄 행사는 잘 마무리 되셨죠?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이사장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만족 하셨나요?

A. “나는 현역 언론인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단체 대한언론인회는 언론사에서 재직을 하시다가 퇴임을 하신 분들, 특히 기자여야 하는 특별한 단체입니다. 540여명 회원,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이 40여분, 장관을 지내신 분도 8분이나 됩니다. 언론사에서 임원을 지낸 분들도 다수입니다.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를 넘어서 해마다 현안 문제가 있으면 세미나, 팸 투어를 개최하고 있고, 회원인 기자 출신들이 월간지(대한언론)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국제심포지엄 행사는 만족이라고 볼 수 없고,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영상으로 진행되다 보니, 실제로 해외에서 많은 분들이 오셔서 토론도 하고, 역동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토론 참여자와 제안내용 등을 책으로 만들어서 배포한 점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해외동포 750만명을 대표하여 해외동포들의 현안 문제를 언론인들이 세미나를 통해서 발표하여 정부에 건의하고 시정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최하겠습니다.

 

▲ 언론계 거목들3 (세상 밝힌 이야기표지                                      © 뉴욕일보


Q  먼저, 대한언론인회에서 출간하신 언론계거목들 3편의 출간을 축하 드립니다. 발간하게 된 동기나 특별한 의미가 있으신지.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출간하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인사들을 어떻게 선정 하시나요?

A 언론계에서 순수하게 평생 종사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 중에서 선임을 하고, 특히 언론계에 족적을 남기신 분들을 언론계거목에 실었습니다. 대한언론인회의 원로들이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박기병 대한언론인회장은 “이 책은 언론 창달을 위해 일편단심으로 언론 외길만을 달려온 원로 언론인들의 투철한 언론 정신, 진솔한 삶, 그리고 귀감이 됐던 기자정신의 사례들을 모아 후진들에게 전해주자는 취지에서 발간했다”며 “미래 언론인들에게도 희망의 등대가 되고 소중한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특히, 책 내용 중 6.25참전언론인회 초대회장 이셨던 소로(素露)이혜복 선생님은 6.25 한국전쟁 때 경향신문에서 종군 기자로 근무 중에 국군이 평양을 진격하여 평양에 입성 하였다는 국군 평양 탈환 입성기보도를 하여 동족상잔의 처참한 한국전쟁사는 물론 우리 언론사에 영원하고도 귀중한 증언으로 남을 한편의 드라마와 같아 특별함이 더하다

 

Q  이사장님께서는 평생 언론계에 종사 하셨습니다. 지금도 언론계의 대부이신 역할을 하고 계시는데 처음 입사를 언제 어디서 하셨는지요?

A 1958, 대한통신에 입사했는데, 그 때는 UPI통신과 계약사로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1년 정도 지나서, 부산에서 나오는 국제신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부산일보로 스카웃되어서 정치부기자로 일해 왔습니다. 국회 출입은 3대 국회 때부터 10대까지 했고 그리고 청와대 출입기자로 일했습니다.

 

Q  기자생활 하실 때 기억나는 특별한 추억이 있으시면 부탁 드려요? 그리고 첫 인터뷰를 하신 분은 누구신지요?  또한, 존경하는 언론인은 누구시죠?

A. 첫 인터뷰는 김영삼 대통령, 3대 국회 때 부산에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을 때, 김영삼 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추후 MBC에서 임원으로 일하다가 잠시 언론계를 떠났을 때, 김영삼 대통령 선거운동본부 강원도 총책임을 맡기도 했었습니다.

존경하는 언론인은 윤주영 선생님, 공보처 장관도 하시고 지금 100세가 가까우신 분을 제가 기자협회 회장을 할 때 기자협회보의 폐간을 월간회보와 주간회보로 전환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Q. 현재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의 이사장님으로 계신데 이 단체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와 바램이 있으신지 말씀 부탁 드립니다.

A. 재외편협은 개인의 성향과 이념의 사고를 인정하며 중시한다. 목적은 750만 해외동포분들의 마중 물 역할이 아닙니까? 지금 시점의 재외편협이 재외언론인들의 역량강화와 750만 동포 대변인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출범한 재능 기부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좋은 모습과 발전적인 방향으로 다수의 목소리를 함께 이룰 수 있는 언론은 무었일까? 생각하며 협회운영은 국내외 언론인 역량강화와 발전성의 목적이라 지금까지 또 내일의 방향성은 내 모습이라고 봅니다.

 

Q. 신문 방송계 재직시절에 해외 언론과의 특별한 인연은 있으셨나요?

A. 대만의 언론계하고 교류와 친분이 많았습니다. 연합보가 가장 큰 신문사인데, 기자협회 회장시절에 기자협회 기자상 시상에 해외여행을 부상으로 주는데 해외 여행코스를 잡을 길이 없어 대만대사관을 통하여 대만계 언론인과 소통하면서 교류가 시작되었고, 대만 총통인 장징궈, 리덩후이 총통과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기자와 대만기자들도 서로 오가면서 많은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춘천 MBC 사장 시절 일본의 후꾸이TV 20주년 창립기념일에 축사를 하게 됐는데, 마침 일본 게이오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친구가 있어서 도움을 받아 일본어로 직접 스피치를 했는데, 일본인들이 놀라며 연설문을 보여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국과 수교가 되기도 전인데 일본의 후꾸이TV가 교량 역할을 해서, 중국의 절강성TV와 연결되어, 홍콩을 통하여 중국 절강성을 가게 되어 절강성 TV와도 교류를 맺고 국내 뉴스가 중국에 전송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Q. 유신정권 시절의 검열과 고초를 당하신 일이 있으셨나요?

A. 기자협회 회장을 할 당시 이영희선생이 기자협회보에 칼럼을 실는데 타이틀이 신문이 하나 둘 없어져 간다”.를 게재하여서 중정 남산에서 연락이와 동아일보 뒤의 3국에 끌려갔으나, 조사도 안 하고 아무 소리도 안하고 오고 가는 직원들이  이 새끼는 여기 왜 왔어라며  말도 안 시키고 살벌한 묵언의 고초를 당하였던 중 마침 국회에서 국회기자들이 일체 보도 보이콧을 하였다. 기자들이 보도를 하지 않차, 국회의장이 기자들 다 어디 갔나? 하자  박기병 회장이 남산 가 있다고 하니, 김진만 부의장이 이후락부장 한테 어쩌려고 회장을 잡아갔느냐고 묻자 그 후 석방이 되었다.

 

Q  6.26 참전 언론인회 회장을 역임 하시는데 6.26전쟁 중에 기억나는 종군기자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A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이혜복 선생의 국군 평양입성 보도나 외국 종군기자의 양구 펀치볼전투다.  해발 1,100m이상의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분지로 형성된 지역이다. 펀치볼마을의 지명은 6.25전쟁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본 노을 진 분지가 칵테일 유리잔 속의 술 빛과 같고, 해안분지의 형상이 화채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펀치볼마을은 양구군 해안면의 만대리, 1,2,3, 오유1,2리의 여섯 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Q  마지막으로 언론후배들에게 올바른 언론인들의 자세와 방향에 대한 지침으로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A “발로 뛰어라”. 지금 기자들, 남이 쓴 걸 풀로 받아서 받아 적는 경우가 있는데, 그 기사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직접 뛰어야 합니다. 기자협회 모임 때 가끔 만나서,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취재해야 합니다. 전화나 서면보다,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면 완전히 살아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 라고 필자에게도 당부를 하셨다.

뉴욕일보 최용국 지사장과 면담을 하는 박기병 회장                             © 뉴욕일보


긴 시간 생생한 기억으로 인터뷰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20년은 더 건강하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감사 합니다.

 

박기병 회장 (1932년 강원도 양구)

현 대한언론인회 회장

현 재외동포신문방송인편집인협회 이사장

6.25 참전언론인회 회장

현 한국기자협회 고문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10, 17)

전 강원민방 사장

전 춘천 MBC 사장

전 강릉 MBC 사장

 

뉴욕일보 최 용국 기자 / 김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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