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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경이 만난 사람들] “이쑤시개 하나 꽂을 땅한칸만 있으면…과거 이 한줄기 생각이 지금 저를 만들었습니다” 포레스트 하이츠 전재완 대표

북미 동포들과 함께 성공을 실현할 부동산 비즈니스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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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식
기사입력 2020-08-04

 

장익경뉴욕일보 칼럼리스트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6개월을 넘어서며 장기화에 접어든 가운데, 방역 모범 국가로 공인된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바라는 교민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교민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나 이민전문업체의 상담 증가 등을 통해 충분히 확인된다. 현재 미주 한인들의 한국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평택에 이민 1세대가 선호하는 미국식 고급 렌탈하우스를 선보이며, 현지에서 화제가 된 릴라이언스 전재완 대표이사를 만나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어린 시절 가난했고, 롤러코스터처럼 변화를 겪었다. 아버님은 황해도, 어머님은 개성 출신이라 한국에 기반이 없었고 피난을 나와 고생을 많이 하셨다. 집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 형제들은 70년대에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 현재까지 LA 등에서 정착해 살고 있다. 나도 젊은 시절 미국에 머물며 84년 애리조나에서 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를 계속할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당시 학비가 너무 비싸서, 부모님은 감당할 수가 없었고 학자금 대출을 받을 조건에도 못 미쳤다.

결국 귀국할 수 밖에 없던 나는 교포들의 흔한 푸념처럼, 한국에 이쑤시개라도 꽂을 땅이 없음을 한탄했다. 만약 그런 땅이라도 있었다면 친척들이 이민을 떠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었다. 반항적인 기질까지 나타나던 시기였다.

공부할 여건이 안되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했다. 이쑤시개 꽂을 땅이 없다는 생각은 마음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나에겐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인천 보세창고와 건축 관련 일들이 각인되었었는데, 결국은 나도 건축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뉴욕일보 칼럼리스트 장익경(왼쪽), 포레스트 하이츠 등 평택 부동산 개발로 한국은 물론 북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전재완 대표(우측)     ©

 

 

돈도 없이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나?

역시 처음에는 자금이 없어서 허름한 건물을 리모델링 하였다. 설비 쪽만 문제없으면 도배와 장판 수준으로도 가능해서 큰돈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작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점점 규모가 커졌다. 덩치가 커지면서 이미 성사된 사업을 빼앗기는 일도 벌어졌다.

어머니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가르쳐 주셨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도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연달아 우물을 빼앗기지만 결국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나도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성장해 나갔다. 지금은 여러 번 사업을 빼앗긴 일도 모든 것이 감사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느새 사업이 커져서 대형 오피스텔을 짓게 되었다. 그런데 모델하우스의 발전기가 고장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팍팍팍 터지는 소리가 크게 났고 실내는 깜깜한 정전이 되었다. 그때는 이거 망했구나’, ‘어디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라고 생각했다.

30분이 지나서 발전기를 고쳤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계약서를 작성하던 아주머니 손님들이 한 사람도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전에 비명소리가 났을 때는 전부 나간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 순간, 한국 사람들은 부동산에 집착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 부동산 사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도 가졌다. 그날, 3시간 만에 360세대를 분양했다.

 

▲ 미국, 캐나다에 북미동포들과 함께 성공하는 부동산 비즈니스 실현한 포레스트 하이츠 전재완 대표     ©

 

 

 

평택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8년 전, 땅을 봐달라는 지인의 부탁에 평택을 찾아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본 지역이었다. 그런데 그 시골 공인중개소에서 일산의 큰 부자로 소문난 지인을 갑자기 만났다. 그는 거기서 건물과 땅을 매입했다고 밝혔다그때부터 평택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수개월 다리품을 팔아 나 혼자서 평택을 돌아다녔다. 이제는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시에서 미국인을 상대로 렌탈 사업을 시작한지도 8년차다.

 

▲ 미국, 캐나다 등 북미 동포들의 은퇴 후 세컨하우스, 수익형 렌탈하우스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포레스트 하이츠 단지 전경     ©

 

 

미국인을 상대로 사업은 잘 되었나?

2014, 평택은 집만 지으면 전부 나갔다. 땅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미군 상대 렌탈 사업이 잘되자 전국의 중소 사업자들이 몰렸다. 부대 근처에 허름한 집밖에 없으니 새집을 지으면 미군들이 금세 계약을 마쳤다. 수익률은 17%까지 얻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한국식으로 지은 집들은 그 물량이 늘어나면서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 우리 회사는 초기부터 미국 문화에 맞는 크기와 스타일을 고려했다.

 

현재 렌탈하우스 분양을 미국 교민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분양받은 분들 중에는 교민도 생겨났다. 미국에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있는 상황에서 생각의 변화가 일었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미국으로 관심을 돌렸다.

현재 분양하는 104세대를 미 전역의 교민들과 계약할 수 있다면, 나는 특별한 네트워크를 갖게 된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이어질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길 기대한다.

 

▲ 포레스트 하이츠 4층 테라스 전경_코로나19시대에 평화로운 고국의 일상을 꿈꾸는 동포들에게 안락함을 전달하고 있다.     ©

 

 

미국 세미나 투어에서 느낀점은?

2018-19, 본격적인 미주투어에 나서며 현지에서 많은 교민들을 만났다. 나는 그분들이 한국의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서 마음의 상처가 크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한국에서 찾아온 업자들은 그만큼 사기꾼이 많았다. 없는 땅과 건물도 있다고 속여서 벌써 많은 피해를 입힌지 오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교민들은 나 역시도 의심하고 있었다. 세미나 후에 손님들을 배웅하면서 그분들의 대화를 우연찮게 들었는데, “저 사람은 한술 더 뜬다. 건물이 다 완성되고 렌탈도 진행 중이란다며 혀를 찬 것이다.

나는 그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부터, 2일이나 잠을 못 잤다. 그동안 미국 전역을 샅샅이 돌아다닌 게 다 허사였나 싶었다. 이후 투어에서는 의심하는 교민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새 한분 한분 고객이 늘었고, 한국까지 와서 이른바 팩트체크에 나서는 투자자도 생겨났다. 어렵게나마 신뢰를 쌓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을 전망해 달라.

과거 10년의 부동산 그래프를 봐달라. 정부가 원하는 대로 수치가 내려간 적이 없다. 주식 시가 총액이 오르듯이 주택값도 오를 것이다.

 

<뉴욕일보 칼럼리스트 장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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